'김구 동상' '김대중 공항'이 맞다.
[오마이뉴스] 2009년 09월 28일(월) 오전 11:07 가 가| 이메일| 프린트 [오마이뉴스 김성호 기자]
우리나라 대표적 보수논객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놀라운 제안을 하고 나섰다. 국가의 상징물들에 대해 전면적인 교체를 하자는 주장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의 동상과 화폐의 인물 도안을 교체하고, 국제공항과 서울 중심 거리의 이름도 바꾸자고 한다.
조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인 '조갑제닷컴' 에 지난 20일에 이어 25일 잇따라 올린 글을 통해 이런 국가 상징물 교체를 공식 제안했다. 단순히 개인의 일회성 의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을 압박하면서 공식적인 국민운동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 정도면 보수 세력의 범국민운동이다.
처음에는 '황당한 주장'으로 치부하던 일부 보수언론들도 이제는 그의 제안을 상당히 의미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그의 주장이 일회성이 아니라 보수 세력의 이념적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는 데다가 제안 내용이 포괄적이면서 구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조씨는 처음에는 '광화문 광장에 이승만 동상 건립과 화폐 도안에 이승만 포함'을 주장하다가, 두 번째 글에서는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을 박정희 공항으로, 광화문 광장 이름도 이승만 광장으로, 테헤란로는 트루먼로'로 바꾸자는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 나섰다. 이른바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보수 세력의 역사관이나 국가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주장이다.
국가 상징물 교체하자는 발상은 옳지만...
국가 상징물의 전면 교체를 주장하는 조씨의 제안을 나는 누구보다 환영한다. 나는 조씨에 앞서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기사를 통해 이미 국가 상징물의 교체를 주창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미안해요, 김구 선생> (2009.8.15), <아프리카 지폐와 한국지폐는 무엇이 다른가> (2007.9.7))
나는 두 번 놀랐다. 조씨와 인식의 출발이 같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또 그와 인식의 결과가 너무나 다르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랐다. 인식의 논리적 출발점인 기본 철학은 같은데, 결론은 왜 엉뚱하게도 정반대일까?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역사관의 차이일까, 아니면 보편적 보수주의에서 한참 멀어진 우리나라의 '뒤틀린 보수주의'의 모습을 보는 것일까.
나는 국가 상징물을 교체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그의 철학적 논리와 역사관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평소 나의 생각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국가 상징물의 교체 대상도 똑같다. 오로지 다른 것은 대안 인물이다. 혹시 내가 제안한 내용을 보고 대안 인물만을 바꿔치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조씨는 국가의 상징물인 광화문의 동상과 거리 이름, 화폐 도안의 인물들을 교체해야 하는 이유로 '전부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고, 조선조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들고 있다. 현재 화폐의 인물로는 "이율곡, 신사임당, 이퇴계, 이순신, 세종대왕"만 있고, 서울 거리의 이름으로는 "세종로, 퇴계로, 도산로"만 있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인 안창호 선생의 도산로 대신 이이의 율곡로나 이순신의 충무로를 사례로 들었으면 더 적절했을 듯하다.
조씨는 '이런 현상만 보면 대한민국은 아직 왕의 나라이고, 국민은 신민"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이 주인인 공화정의 대한민국에도 훌륭한 인물들이 많은데, 왕이 주인이던 봉건왕조시대의 인물만을 포함시켰다는 비판이다. 전적으로 옳은 지적이다.
공화국 시대의 대한민국에 왕조시대 인물만 넘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5천 년 우리 역사 중 유일하게 국민(인민)이 주인인 공화정, 즉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바로 공화정이라는 국체를 규정한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도 근대 이후의 공화정체제는 옛날 왕정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공화정 출범의 계기가 된 7월 14일과 6월 2일을 각각 혁명기념일과 공화국 기념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제2차 세계를 전후해 독립한 제 3세계 국가들도 모두 공화정 체제의 출범인 독립기념일을 기리고 있다. 우리의 8월 15일 광복절도 자주국가로서의 '독립'과 국체로서의 '공화정' 출범을 기념하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조선조 인물만 기리면, 생동하는 대한민국은 실종된다"거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념물은 서울에 없다", "일본은 화폐에 명치유신 이후 인물만 넣는다", "공화국 체제의 화폐는 거의가 그 공화국을 만든 인물들을 담는다"는 조씨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다. 옛날 왕정시대의 인물들에서 국가의 법통과 정체성을 찾는 나라는 오로지 대한민국뿐이다.
세계 모든 나라는 예외 없이 대부분 공화정 체제의 아버지, 즉 독립투사들을 국가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수도의 중심 광장도 그렇고, 동상도 그렇고, 거리 이름도 그렇고, 화폐의 인물 도안도 그렇고, 국제공항의 이름도 모두 공화정의 영웅들을 기념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현재의 우리나라 국가 상징물들은 전면적으로 교체가 되어야 한다. 공화정의 독립투사들의 이름이 수도 중심 광장의 동상이나, 화폐, 중심 거리, 국제공항에 하나도 없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본군 장교 출신들로 이뤄진 박정희 정권의 친일 성격으로 빚어진 왜곡된 역사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이승만? 김구? 국부는 누구일까
▲ 국민행동본부,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한민국사랑회,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회원들이 2008년 8월 1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건국60주년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과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대한민국에는 공화정의 얼굴이 될 훌륭한 인물들도 많다. 조씨와 나는 여기서 갈라진다. 그는 이승만과 박정희에서 찾고, 나는 김구 선생과 유관순,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안창호 등 수많은 독립투사에서 찾는다.
우리나라의 국부, 즉 나라의 아버지이며 독립의 아버지, 건국의 아버지, 공화정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과 정체성, 가치를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우리 대한민국 헌법에 나와 있다.
헌법의 전문에는 법통, 즉 역사적 정통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서 찾고 있고, 국가 건국의 기초이념은 "4.19 민주이념"의 민주주의에서 찾고 있으며, 역사적 사명은 "평화적 통일"의 남북통일에서 찾고 있다. 우리의 국부는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평화통일의 얼굴을 한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국부, 나라의 아버지, 건국의 아버지는 바로 김구 선생이다.
이승만은 이미 1925년 국제연맹에 조선의 위임통치를 건의했다 상하이 임시정부에 탄핵당해 초대 임시 대통령직에서 쫓겨나 임시정부의 법통을 잃었고, 4월 혁명으로 쫓겨난 독재자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어긋나고, 권력 장악을 위한 단독정부 수립과 무력 북진통일론자로 평화통일의 사명에도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우리 현행 헌법에서 말하는 국부, 건국의 아버지의 상징인 임시정부 법통과 민주주의, 평화통일의 가치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주석으로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으며, 민족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자였으며, 인도와 파키스탄의 통합을 통한 통일인도를 추구했던 간디처럼 남북한의 통일정부를 주창했던 평화통일의 상징적 인물이다. 남한만의 이승만 단독 정부와 북한의 김일성 단독 정부의 수립을 모두 반대했던 김구야말로, 현재 대한민국 헌법이 추구하는 건국의 아버지다.
이승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해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보수 세력의 형식 논리야말로 얼마나 공허한가. 인도의 간디를 봐라. 인도의 국부, 건국의 아버지는 독립 후 어떤 국가원수직도 맡지 않은 마하트마 간디지, 초대 총리인 네루가 아니다. 내가 오래전 여행했던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와 말라위도 그 나라의 초대 대통령이 아니라 독립투사인 에두아르도 몬들라네와 존 칠렘브웨를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한다.
건국의 아버지는 그 나라의 역사적 정통성과 정체성, 가치를 대표하는 인물이지, 단순히 초대 대통령이 아니다. 보수 세력들이 내세우는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은 허상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김구의 이상을 추구하지, 이승만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보수든 진보든 남한은 김구에서 국가의 법통을 찾아야
▲ 김구 선생
ⓒ 백범기념관
제대로 된 보수 세력이라면, 정통 민족주의 보수주의자인 김구를 건국의 아버지요 보수의 상징으로 떠받들어야할 것 아닌가. 우리 보수 세력들은 서구 보수 세력처럼 윈스턴 처칠이나 드골 같은 인물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지 않고, 왜 엉뚱하게 독재와 친일의 이승만과 박정희에게서 그 뿌리를 찾으려 하는가.
우리 헌법의 정신에 비춰보더라도 결코 건국의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이승만과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파괴한 박정희에 보수 세력들이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이승만이 젊은 시절 미국에서 국제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한 사실과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이룬 업적을 인정한다 해도, 결코 이승만과 박정희는 건전한 보수 세력의 상징이 될 수 없다.
남한의 경우 분단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법통과 건국의 아버지는 보수든 진보든 민족주의 독립투쟁 노선을 간 김구로부터 찾을 수밖에 없다. 북한에는 사회주의 독립투쟁 노선인 항일게릴라에서 정통성을 찾는 김일성 정권이 있지 않은가.
조갑제씨의 주장대로 '국가의 상징물인 광화문 광장'에는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 동상이 들어서야 한다. 광화문 광장의 이름도 이승만 광장이 아니라, 독립광장으로 불러야 한다. 서울 한 복판의 세종로와 태평로 거리는 이름부터 광복거리나 독립거리로 바꿔야 한다. 조씨 표현대로 "그래야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건국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화폐도 조씨 표현대로 '공화국 체제의 화폐는 거의가 그 공화국을 만든 인물들을 담듯이' 원래대로 공화국의 상징인 김구 선생의 얼굴이 들어간 10만 원 권 지폐는 발행돼야 한다. 조씨의 주장인 "신사임당과 이율곡 중 한 사람을 빼고 이승만을 넣어야 한다"가 아니라, 애초 신사임당 대신 유관순 누나를 넣어야 했다. 지폐에 독립투사가 한 명도 없는 유일한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조씨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이름을 트루먼로로 바꾸자고 한다. 한국전쟁 때 미군 파병을 결정한 당시 트루먼 미 대통령을 기리자는 의미란다. 미국의 한국전 참전과 관련해서는 이미 인천의 자유공원에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테헤란로의 이름을 굳이 트루먼로로 바꿀 필요가 있는가.
더욱이 테헤란로의 역사를 안다면 트루먼로로 바꾸자는 주장은 결코 할 수가 없다. 외교 관례상 우리나라가 일방적으로 도로 이름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테헤란로는 지난 1977년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시장이 서울을 방문해 서울시와 테헤란시의 자매결연 체결을 기념해 두 도시의 도로 이름을 교환하자는 약속에 따른 것이다.
서울에 테헤란로가 있듯이, 테헤란 시내에도 현재 '서울로(서울 스트리트)'가 있다. 테헤란로를 바꾸자는 것은 단순한 도로 이름 바꾸기가 아니라, 서울시과 테헤란시의 자매결연을 파괴하는 행위로서 한-이란간의 우호관계는 물론 외교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결례다.
뉴스위크, 대한민국의 개혁 지도자로 박정희가 아니라 김대중 선정
▲ 고 김대중 전 대통령
ⓒ 오마이뉴스 남소연
조씨는 "김포 공항이나 인천 공항 중 하나는 '박정희 공항'으로 고칠 것"을 제안하나, 인천공항은 김구공항으로 바꾸면 된다. 제3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독립의 아버지 이름을 딴 국제공항을 갖고 있으나, 독재자의 이름을 딴 국제공항은 어디에도 없다. 인도네시아에 수하르토 공항이나 칠레에 피노체트 공항은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는 경북 구미에 박정희체육관이 있고, 서울 상암동에는 김대중 정부의 약속으로 박정희 기념관도 건립되고 있지 않은가. 경남 합천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일해공원도 있는 나라다. 국가적 차원이 아니라 지역차원에서 하는 기념사업을 어떻게 하겠는가.
조씨는 "20세기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공작으로 뽑히는 대한민국의 성공 스토리, 그 주인공이 이승만과 박정희이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유력한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강력한 지도력으로 '혁신적인 국가 개혁에 성공한 현대 세계의 정치지도자(트랜스포머)' 11인 중에 이승만이나 박정희가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았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결코 단순한 경제업적 하나만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 덩샤오핑 전 중국 지도자, 룰라 브라질 대통령,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등과 함께 '나라를 바꾼 세계의 개혁 지도자' 11명에 선정됐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투쟁과, 평화적 정권교체와 IMF 경제위기 극복,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 정착, 노벨 평화상 수상 등의 이유로 선정됐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인권을 부정한 독재자는 결코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뉴스위크>의 평가 기준으로 보면, 박정희는 그 나라의 경제발전에는 어느 정도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군사 쿠데타로 집권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나 칠레의 피노체트처럼 전형적인 제3세계 군부독재자일 뿐이다.
조씨는 "화폐 도안, 거리이름, 동상, 기념관 등을 통하여 우리의 곁에, 우리의 생활 속으로 대한민국의 영웅들이 다가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대한민국의 영웅들'에 이승만과 박정희는 아니다.
역사는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김구와 김대중의 노선 중 어느 쪽의 편을 들어줄까. 대한민국 헌법 정신은 어느 쪽에 있을까. 이제는 정말 잘못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할 때다. 보수 세력들이 빼앗아간 국부, 건국의 아버지의 자리에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를 공식적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보수 세력들은 이미 역사적으로 죽은 이승만과 박정희에 집착할수록 노선싸움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보수 세력들도 이제는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처칠이나 드골 같은 새로운 보수주의 지도자를 양성해야 하지 않을까. 김구와 김대중에 대항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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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기자)
[오마이뉴스] 2009년 09월 28일(월) 오전 11:07 가 가| 이메일| 프린트 [오마이뉴스 김성호 기자]
우리나라 대표적 보수논객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놀라운 제안을 하고 나섰다. 국가의 상징물들에 대해 전면적인 교체를 하자는 주장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의 동상과 화폐의 인물 도안을 교체하고, 국제공항과 서울 중심 거리의 이름도 바꾸자고 한다.
조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인 '조갑제닷컴' 에 지난 20일에 이어 25일 잇따라 올린 글을 통해 이런 국가 상징물 교체를 공식 제안했다. 단순히 개인의 일회성 의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을 압박하면서 공식적인 국민운동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 정도면 보수 세력의 범국민운동이다.
처음에는 '황당한 주장'으로 치부하던 일부 보수언론들도 이제는 그의 제안을 상당히 의미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그의 주장이 일회성이 아니라 보수 세력의 이념적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는 데다가 제안 내용이 포괄적이면서 구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조씨는 처음에는 '광화문 광장에 이승만 동상 건립과 화폐 도안에 이승만 포함'을 주장하다가, 두 번째 글에서는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을 박정희 공항으로, 광화문 광장 이름도 이승만 광장으로, 테헤란로는 트루먼로'로 바꾸자는 구체적인 제안을 하고 나섰다. 이른바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보수 세력의 역사관이나 국가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주장이다.
국가 상징물 교체하자는 발상은 옳지만...
국가 상징물의 전면 교체를 주장하는 조씨의 제안을 나는 누구보다 환영한다. 나는 조씨에 앞서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기사를 통해 이미 국가 상징물의 교체를 주창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미안해요, 김구 선생> (2009.8.15), <아프리카 지폐와 한국지폐는 무엇이 다른가> (2007.9.7))
나는 두 번 놀랐다. 조씨와 인식의 출발이 같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또 그와 인식의 결과가 너무나 다르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랐다. 인식의 논리적 출발점인 기본 철학은 같은데, 결론은 왜 엉뚱하게도 정반대일까?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역사관의 차이일까, 아니면 보편적 보수주의에서 한참 멀어진 우리나라의 '뒤틀린 보수주의'의 모습을 보는 것일까.
나는 국가 상징물을 교체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그의 철학적 논리와 역사관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평소 나의 생각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국가 상징물의 교체 대상도 똑같다. 오로지 다른 것은 대안 인물이다. 혹시 내가 제안한 내용을 보고 대안 인물만을 바꿔치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조씨는 국가의 상징물인 광화문의 동상과 거리 이름, 화폐 도안의 인물들을 교체해야 하는 이유로 '전부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고, 조선조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들고 있다. 현재 화폐의 인물로는 "이율곡, 신사임당, 이퇴계, 이순신, 세종대왕"만 있고, 서울 거리의 이름으로는 "세종로, 퇴계로, 도산로"만 있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인 안창호 선생의 도산로 대신 이이의 율곡로나 이순신의 충무로를 사례로 들었으면 더 적절했을 듯하다.
조씨는 '이런 현상만 보면 대한민국은 아직 왕의 나라이고, 국민은 신민"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이 주인인 공화정의 대한민국에도 훌륭한 인물들이 많은데, 왕이 주인이던 봉건왕조시대의 인물만을 포함시켰다는 비판이다. 전적으로 옳은 지적이다.
공화국 시대의 대한민국에 왕조시대 인물만 넘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5천 년 우리 역사 중 유일하게 국민(인민)이 주인인 공화정, 즉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바로 공화정이라는 국체를 규정한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도 근대 이후의 공화정체제는 옛날 왕정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공화정 출범의 계기가 된 7월 14일과 6월 2일을 각각 혁명기념일과 공화국 기념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제2차 세계를 전후해 독립한 제 3세계 국가들도 모두 공화정 체제의 출범인 독립기념일을 기리고 있다. 우리의 8월 15일 광복절도 자주국가로서의 '독립'과 국체로서의 '공화정' 출범을 기념하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조선조 인물만 기리면, 생동하는 대한민국은 실종된다"거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념물은 서울에 없다", "일본은 화폐에 명치유신 이후 인물만 넣는다", "공화국 체제의 화폐는 거의가 그 공화국을 만든 인물들을 담는다"는 조씨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다. 옛날 왕정시대의 인물들에서 국가의 법통과 정체성을 찾는 나라는 오로지 대한민국뿐이다.
세계 모든 나라는 예외 없이 대부분 공화정 체제의 아버지, 즉 독립투사들을 국가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수도의 중심 광장도 그렇고, 동상도 그렇고, 거리 이름도 그렇고, 화폐의 인물 도안도 그렇고, 국제공항의 이름도 모두 공화정의 영웅들을 기념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현재의 우리나라 국가 상징물들은 전면적으로 교체가 되어야 한다. 공화정의 독립투사들의 이름이 수도 중심 광장의 동상이나, 화폐, 중심 거리, 국제공항에 하나도 없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일본군 장교 출신들로 이뤄진 박정희 정권의 친일 성격으로 빚어진 왜곡된 역사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이승만? 김구? 국부는 누구일까
▲ 국민행동본부,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한민국사랑회,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회원들이 2008년 8월 1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건국60주년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과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대한민국에는 공화정의 얼굴이 될 훌륭한 인물들도 많다. 조씨와 나는 여기서 갈라진다. 그는 이승만과 박정희에서 찾고, 나는 김구 선생과 유관순,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안창호 등 수많은 독립투사에서 찾는다.
우리나라의 국부, 즉 나라의 아버지이며 독립의 아버지, 건국의 아버지, 공화정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과 정체성, 가치를 대표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우리 대한민국 헌법에 나와 있다.
헌법의 전문에는 법통, 즉 역사적 정통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서 찾고 있고, 국가 건국의 기초이념은 "4.19 민주이념"의 민주주의에서 찾고 있으며, 역사적 사명은 "평화적 통일"의 남북통일에서 찾고 있다. 우리의 국부는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평화통일의 얼굴을 한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국부, 나라의 아버지, 건국의 아버지는 바로 김구 선생이다.
이승만은 이미 1925년 국제연맹에 조선의 위임통치를 건의했다 상하이 임시정부에 탄핵당해 초대 임시 대통령직에서 쫓겨나 임시정부의 법통을 잃었고, 4월 혁명으로 쫓겨난 독재자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어긋나고, 권력 장악을 위한 단독정부 수립과 무력 북진통일론자로 평화통일의 사명에도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우리 현행 헌법에서 말하는 국부, 건국의 아버지의 상징인 임시정부 법통과 민주주의, 평화통일의 가치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주석으로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으며, 민족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자였으며, 인도와 파키스탄의 통합을 통한 통일인도를 추구했던 간디처럼 남북한의 통일정부를 주창했던 평화통일의 상징적 인물이다. 남한만의 이승만 단독 정부와 북한의 김일성 단독 정부의 수립을 모두 반대했던 김구야말로, 현재 대한민국 헌법이 추구하는 건국의 아버지다.
이승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해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보수 세력의 형식 논리야말로 얼마나 공허한가. 인도의 간디를 봐라. 인도의 국부, 건국의 아버지는 독립 후 어떤 국가원수직도 맡지 않은 마하트마 간디지, 초대 총리인 네루가 아니다. 내가 오래전 여행했던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와 말라위도 그 나라의 초대 대통령이 아니라 독립투사인 에두아르도 몬들라네와 존 칠렘브웨를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한다.
건국의 아버지는 그 나라의 역사적 정통성과 정체성, 가치를 대표하는 인물이지, 단순히 초대 대통령이 아니다. 보수 세력들이 내세우는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은 허상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김구의 이상을 추구하지, 이승만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보수든 진보든 남한은 김구에서 국가의 법통을 찾아야
▲ 김구 선생
ⓒ 백범기념관
제대로 된 보수 세력이라면, 정통 민족주의 보수주의자인 김구를 건국의 아버지요 보수의 상징으로 떠받들어야할 것 아닌가. 우리 보수 세력들은 서구 보수 세력처럼 윈스턴 처칠이나 드골 같은 인물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지 않고, 왜 엉뚱하게 독재와 친일의 이승만과 박정희에게서 그 뿌리를 찾으려 하는가.
우리 헌법의 정신에 비춰보더라도 결코 건국의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이승만과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파괴한 박정희에 보수 세력들이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이승만이 젊은 시절 미국에서 국제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한 사실과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이룬 업적을 인정한다 해도, 결코 이승만과 박정희는 건전한 보수 세력의 상징이 될 수 없다.
남한의 경우 분단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법통과 건국의 아버지는 보수든 진보든 민족주의 독립투쟁 노선을 간 김구로부터 찾을 수밖에 없다. 북한에는 사회주의 독립투쟁 노선인 항일게릴라에서 정통성을 찾는 김일성 정권이 있지 않은가.
조갑제씨의 주장대로 '국가의 상징물인 광화문 광장'에는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 동상이 들어서야 한다. 광화문 광장의 이름도 이승만 광장이 아니라, 독립광장으로 불러야 한다. 서울 한 복판의 세종로와 태평로 거리는 이름부터 광복거리나 독립거리로 바꿔야 한다. 조씨 표현대로 "그래야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건국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화폐도 조씨 표현대로 '공화국 체제의 화폐는 거의가 그 공화국을 만든 인물들을 담듯이' 원래대로 공화국의 상징인 김구 선생의 얼굴이 들어간 10만 원 권 지폐는 발행돼야 한다. 조씨의 주장인 "신사임당과 이율곡 중 한 사람을 빼고 이승만을 넣어야 한다"가 아니라, 애초 신사임당 대신 유관순 누나를 넣어야 했다. 지폐에 독립투사가 한 명도 없는 유일한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조씨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이름을 트루먼로로 바꾸자고 한다. 한국전쟁 때 미군 파병을 결정한 당시 트루먼 미 대통령을 기리자는 의미란다. 미국의 한국전 참전과 관련해서는 이미 인천의 자유공원에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테헤란로의 이름을 굳이 트루먼로로 바꿀 필요가 있는가.
더욱이 테헤란로의 역사를 안다면 트루먼로로 바꾸자는 주장은 결코 할 수가 없다. 외교 관례상 우리나라가 일방적으로 도로 이름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테헤란로는 지난 1977년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시장이 서울을 방문해 서울시와 테헤란시의 자매결연 체결을 기념해 두 도시의 도로 이름을 교환하자는 약속에 따른 것이다.
서울에 테헤란로가 있듯이, 테헤란 시내에도 현재 '서울로(서울 스트리트)'가 있다. 테헤란로를 바꾸자는 것은 단순한 도로 이름 바꾸기가 아니라, 서울시과 테헤란시의 자매결연을 파괴하는 행위로서 한-이란간의 우호관계는 물론 외교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결례다.
뉴스위크, 대한민국의 개혁 지도자로 박정희가 아니라 김대중 선정
▲ 고 김대중 전 대통령
ⓒ 오마이뉴스 남소연
조씨는 "김포 공항이나 인천 공항 중 하나는 '박정희 공항'으로 고칠 것"을 제안하나, 인천공항은 김구공항으로 바꾸면 된다. 제3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독립의 아버지 이름을 딴 국제공항을 갖고 있으나, 독재자의 이름을 딴 국제공항은 어디에도 없다. 인도네시아에 수하르토 공항이나 칠레에 피노체트 공항은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는 경북 구미에 박정희체육관이 있고, 서울 상암동에는 김대중 정부의 약속으로 박정희 기념관도 건립되고 있지 않은가. 경남 합천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일해공원도 있는 나라다. 국가적 차원이 아니라 지역차원에서 하는 기념사업을 어떻게 하겠는가.
조씨는 "20세기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공작으로 뽑히는 대한민국의 성공 스토리, 그 주인공이 이승만과 박정희이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유력한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강력한 지도력으로 '혁신적인 국가 개혁에 성공한 현대 세계의 정치지도자(트랜스포머)' 11인 중에 이승만이나 박정희가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았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결코 단순한 경제업적 하나만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 덩샤오핑 전 중국 지도자, 룰라 브라질 대통령,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등과 함께 '나라를 바꾼 세계의 개혁 지도자' 11명에 선정됐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투쟁과, 평화적 정권교체와 IMF 경제위기 극복,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 정착, 노벨 평화상 수상 등의 이유로 선정됐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인권을 부정한 독재자는 결코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뉴스위크>의 평가 기준으로 보면, 박정희는 그 나라의 경제발전에는 어느 정도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군사 쿠데타로 집권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나 칠레의 피노체트처럼 전형적인 제3세계 군부독재자일 뿐이다.
조씨는 "화폐 도안, 거리이름, 동상, 기념관 등을 통하여 우리의 곁에, 우리의 생활 속으로 대한민국의 영웅들이 다가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대한민국의 영웅들'에 이승만과 박정희는 아니다.
역사는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김구와 김대중의 노선 중 어느 쪽의 편을 들어줄까. 대한민국 헌법 정신은 어느 쪽에 있을까. 이제는 정말 잘못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할 때다. 보수 세력들이 빼앗아간 국부, 건국의 아버지의 자리에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를 공식적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보수 세력들은 이미 역사적으로 죽은 이승만과 박정희에 집착할수록 노선싸움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보수 세력들도 이제는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처칠이나 드골 같은 새로운 보수주의 지도자를 양성해야 하지 않을까. 김구와 김대중에 대항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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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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