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9일

'관광 아프리카 뜀틀 될 경기장 증축 비지땀'

검은 대륙 희망 찾기 ⑨ 월드컵으로 뛴다-남아공

권혁철 기자 김태형 기자


»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시내의 사커시티 경기장을 개·보수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은 2010년 월드컵 주경기장으로 쓰일 예정이다. 요하네스버그/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7개국 단일비자 추진으로 통합 기폭제 기대치안 불안·교통난에 백인들 무관심이 걸림돌
지난 8월초 찾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경기장은 증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2010년 월드컵 개막전과 결승전이 열리는 이곳은 7만명 규모 관중석을 9만4천여석으로 확장하고, 비와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지붕을 새로 올리고 있었다.


공사 현장을 둘러보니 곳곳에서 인부들이 터를 파고 철근을 새로 박고 있었다. 타워크레인이 10개나 서 있고 흙을 실은 트럭이 바쁘게 드나들었다. 말이 증축이지 신축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취재진을 안내하던 공사 현장 실무자는 “월드컵 조직위 지침이니까 개·보수를 하지만 다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게 비용이 더 적게 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타보 음베키 남아공 대통령은 아프리카민족회의(ANC) 홈페이지에 ‘월드컵 개최 준비를 차질 없이 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개최가 불투명하다는 오스트레일리아·영국 언론들의 보도가 잇따르자 대통령이 직접 반박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지난 5월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남아공 월드컵 준비가 지연돼 2010 월드컵 개최지가 변경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해 남아공이 발칵 뒤집어졌다.



» 2010 월드컵 로고 바탕에는 가운데 아프리카 대륙 모양이 있고, 월드컵을 개최하는 남아공 국기의 무지개빛 색깔들이 줄무늬처럼 이를 감싸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흑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시저스킥’(일명 오버헤드킥)을 하고 있다. 로고는 아프리카의 탄력과 역동성을 강조한 것이다.

‘남아공 월드컵 회의론’을 털어내기 위해 남아공 정부는 올 상반기에 모든 월드컵 경기장의 공사를 시작했다. 주경기장인 사커시티 등 5곳은 증축하고 5개 경기장은 신축하며, 경기장 근처 교통시설을 개선하는 데 23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사커시티 공사 현장 책임자인 맥스웰 비도는 “2월1일 공사를 시작해 순조롭게 공사를 하고 있으며 2009년 4월23일까지 공사를 마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경기장 개·보수 공사는 남아공 건축기준으로 27개월이면 충분하므로, 2010년 6월11일 월드컵 개막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피파 규정을 보면, 월드컵 개최 5개월 전인 2010년 1월까지 경기장 건설을 완료해야 한다.

‘남아공 월드컵 회의론’의 배경에는 경기장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2010 월드컵은 △치안 불안 △인프라(대중교통·숙박) 부족 △자국 국민(특히 백인)의 낮은 관심이라는 ‘삼각 파도’에 시달리고 있다.

월드컵 대회가 열리면 35만명의 축구팬들과 관광객이 남아공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남아공 정부로선 이들을 노린 각종 범죄가 가장 큰 걱정거리다.

유명한 여행안내서인 〈론리 플래닛〉이 “요하네스버그의 밤 거리를 걷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단언할 만큼 남아공의 치안은 악명이 높다. 지난해 살인 사건으로 1만9천명이 숨졌다. 하루 52명꼴이다. 강도는 21만건, 무기를 들고 떼로 저지르는 특수강도는 12만6천건이 터졌다. 특히 아시아인들이 현금을 많이 갖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아 한국인과 중국인은 주요 표적이다.

게다가 남아공에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이 거의 없다. 출퇴근 때 백인들은 대부분 자가용 차량을 몰고 나오고, 흑인들은 행선지별로 7~9인승 승합차에 합승한다. 대기업들은 직원 1인당 매월 약 70만원을 차량 유지비로 지급한다. 차량이 고장나면 출퇴근이 불가능해 차량을 수리하도록 이틀 가량 휴가를 주는게 남아공의 관행이다. 요하네스버그 출퇴근 시간 교통난은 서울을 능가한다. 아침 7시가 넘으면 외곽에서 도심까지 20㎞ 안팎 거리를 가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린다.

남아공 정부는 월드컵 교통 대책으로 요하네스버그공항과 요하네스버그,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를 잇는 고속철도인 하우트레인을 2010년 완공될 계획인데 공사 진척이 더디다. 숙박 문제에선, 피파 기준에 맞는 5만5천개 객실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 2만6천개 승인에 그치고 있다. 부족한 숙소는 민박·야영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

남아공 국민들의 관심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 것은 더 큰 걱정거리다. 남아공에서 축구는 흑인 운동이다. 백인은 럭비와 크리켓을 한다. 이런 사정으로 백인들의 관심이 상당히 낮다. 지난 4월 한 여론조사를 보면, 남아공 대표팀이 월드컵 8강에 진출할 것이라는 대답이 60%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백인 응답자의 58%는 8강 진출에 실패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아프리카에서 처음 열리는 2010 월드컵은 남아공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남아공 정부는 ‘자랑스러운 남아공’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오랜 인종차별정책으로 악화된 국가 이미지를 개선할 기회로 삼고 있다.

남아공은 월드컵 준비에 530억달러를 쓸 예정이다. 이 가운데 50% 가량이 전력·운송·통신 등 사회기반시설 정비에 들어간다. 월드컵 관련 투자를 통해 2014년까지 일자리 16만개가 새로 생기면, 26%에 이르는 실업률을 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남부 아프리카 나라들은 월드컵을 관광 산업의 도약대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월드컵 기간 남부 아프리카 단일 비자도 추진되고 있다. 월드컵 관광객들에게 짐바브웨·나미비아·스와질랜드·보츠와나 등 7개 나라를 자유롭게 관광할 수 있게 하는 비자를 내주는 것이다. 월드컵이 제국주의 분할 지배가 찢어놓은 남부 아프리카의 통합의 촉매 구실을 하고 있다. <끝>

요하네스버그/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축구 노예상’에 팔려가는 청소년들
푼돈으로 유럽클럽 종신계약…불법 체류


» 요하네스버그 럭비클럽 운동장에서 동네 꼬마들이 공을 차고 있다. 요하네스버그/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 8월 초 콩고민주공화국 수도 킨샤사의 동물원 옆. 10대 초반 어린이 12명이 편을 나눠 공을 차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여느 곳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운동화 두 짝을 모두 신은 아이는 1명이었다.

아이들은 3년 뒤 남아공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국적은 프랑스지만, 콩고에서 나서 자란 클로드 마켈레레(첼시) 같은 유럽 빅리그 선수들의 이름을 아이들은 줄줄 뀄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첼시의 마이클 에시엔(가나)과 디디에 드로그바(코드디부아르), 아스날의 에마뉘엘 아데바요르(토고) 등. 유럽에서 활약하는 대표적인 아프리카 선수들이다. 아이들의 장래 꿈은 유럽에서 축구 선수로 뛰면서 돈과 명예를 움켜쥐는 것이다.

유럽 리그에서 아프리카 선수들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들의 국가대표팀 차출을 놓고 아프리카 대표팀과 유럽 클럽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2008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이 단적인 예다. 클럽들은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라, 대회 시작 2주 전까지 선수들을 아프리카 각국 대표팀에 보내야 한다. 하지만 리그 중간에 핵심 선수를 한 달 넘게 보내야 하는 클럽들이 이를 거부해 다툼이 되풀이된다.

영국 언론들은 이런 갈등을 ‘짊어져야 할 빚’이라고 표현한다. 유럽 빅리그 구단들이 싼 값에 아프리카 선수를 데려와서 활용한 대가를 2년마다 치르는 셈이란 것이다.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나와 유명해지면 몸값이 비싸지기 때문에 에이전트들은 아프리카 각지를 돌아다니며 축구를 잘하는 10대 청소년을 ‘입도선매’한다. 아프리카 축구 유망주들을 발굴해 유럽 클럽에 파는 에이전트들은 ‘21세기 축구 노예상’이라 불린다. 이들은 선수들한테 몸값으로 적은 돈을 주고, 거의 종신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해마다 아프리카 청소년 몇 천명이 에이전트 소개로 유럽 축구 클럽의 입단 테스트를 받는다. 테스트를 통과하는 청소년은 극소수다. 에이전트들은 테스트에 떨어진 청소년들을 팽개치고, 돌아갈 비행기 삯도 없는 이들은 불법체류자가 돼 유럽의 뒷골목을 떠돈다. 가난과 절망의 탈출구인 아프리카 축구의 또다른 그늘이다.

요하네스버그/글 권혁철 기자, 사진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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